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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3 호헌 조치, 국민들의 실망과 분노로 6월 민주항쟁으로 이어지다. 4·13 호헌 조치, 국민들의 실망과 분노로 6월 민주항쟁으로 이어지다. 4·13 호헌 조치는 1987년 4월 13일 전두환 대한민국 대통령이 취한 조치이다. 일종의 특별 선언이기도 하다. 말 그대로 "현행 헌법을 유지한다"(보호한다, 수호한다, 지키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배경 1980년 무력으로 정권을 장악한 전두환 대통령은 제5공화국 헌법을 제정한 뒤 대통령에 취임했다. 이후 대통령의 임기 제한과 입법부의 권력 강화, 통금 해제 및 교복 자율화 등의 유화 조치를 취한다. 그리고 1986년 아시안 게임과 1988년 올림픽을 유치하여 국가적 자부심을 높이기도 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야당 탄압, 반체제 인사에 대한 인권 유린 등으로 국민들의 지탄을 받았다. 이 와중이던 1987년 박종철 고문치.. 더보기
황산벌 전투, 계백 당나라와 신라의 대군을 상대하다. 황산벌 전투, 계백 당나라와 신라의 대군을 상대하다. 황산벌 전투는 660년 8월 20일 (음력 7월 9일) 황산벌(오늘날의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신양리 및 신암리 일대)에서 백제군과 신라군 사이에 일어났던 전투이다. 삼국사기 계백 열전, 삼국유사 태종무열왕조 등에 전투 내용이 나온다. 배경 백제가 신라를 자주 공격하자, 신라는 고구려의 힘을 빌리려 하였으나 실패하고 당에 구원을 요청한다. 김춘추는 당으로 건너가 나,당 간의 동맹을 맺었다. 660년 김유신이 이끈 신라군 5만 명과 소정방이 이끄는 당군 13만, 합하여 18만의 군사가 백제로 쳐들어갔다. 당나라는 수로를 이용해 백제의 백강 쪽으로 쳐들어갔고, 신라군은 육로를 이용하여 백제의 탄현쪽으로 쳐들어갔다. 660년 나-당연합군이 백제를 대대적으로.. 더보기
대조영, 동모산에서 발해를 건국하다. 대조영, 동모산에서 발해를 건국하다. 고왕(高王, ?~ 719년, 재위: 698년 ~ 719년)은 남북국 시대의 북국인 발해(渤海)의 초대 국왕이며, 성은 대(大)이고, 휘는 조영(祚榮)이다. 고왕은 고구려의 장수 걸걸중상의 아들로서, 고구려의 유민이자 옛 고구려의 장수이다. 고왕과 발해에 관해 중국 측 기록인 《구당서》(舊唐書)에서는 발해 말갈의 대조영은 고구려의 별종으로서술하고 있지만, 《신당서》(新唐書)에서는 본래 고구려에 복속되어 있던 속말말갈의 한 일파라고 서술 되어있어 고구려와의 종족 관계를 모호하게 기록하였다. 한국측 기록인 삼국유사에 인용된《신라고기(新羅古記)》, 《제왕운기(帝王韻紀)》에서는 고왕을 고구려 장수라고 기록하였다. 고구려 무장 당시 고구려(高句麗)는 연개소문(淵蓋蘇文)이 사망한.. 더보기
신숭겸, 공산전투에서 왕건의 갑옷을 입고 대신 전사하다. 신숭겸 장군의 묘 신숭겸, 공산전투에서 왕건의 갑옷을 입고 대신 전사하다. 신숭겸(申崇謙, 전라남도 곡성군 용산재, ? ~ 927년 9월?)은 후삼국시대 태봉 말기 및 고려 초기의 무신으로, 고려의 개국 공신으로, 궁예의 부장이었으나 918년 왕건을 추대하여 고려 건국에 기여하였으며 927년 공산 전투에서 왕건의 갑옷을 바꾸 어 입고 대신 전사하였다. 견훤의 후백제군이 그의 시신에서 수급을 베어 갔으므로 고려 태조는 순금으로 두상(頭像)을 만들어 시신과 같이 매장하였 다 한다. 원래 이름은 삼능산(三能山) 또는 능산(能山)이며, 시호는 장절(壯節), 평산 신씨의 시조이다. 몸이 장대하고 무용에 출중했다. 고려 개국 초명은 삼능산(三能山)이다. 후에 고려 태조 왕건으로부터 신씨의 성과 평산을 관향으로 하사.. 더보기
태조 왕건, 고려를 세우다. 훈요10조, 호족의 유화정책, 북진정책, 불교장려정책 태조 왕건, 고려를 세우다. 훈요10조, 호족의 유화정책, 북진정책, 불교장려정책 태조(太祖, 877년 1월 31일 (음력 1월 14일) ~ 943년 7월 4일 (음력 5월 29일))는 후삼국 시대 후고구려의 장군이자 고려의 초대 왕(재위기간 : 918년 7월 25일 - 943년 7월 4일)이다. 성은 왕(王), 휘는 건(建), 본관은 개성(開城), 자는 약천(若天), 이다. 연호는 천수(天授)이다. 송악의 호족 왕륭(王隆)과 그 부인 한씨(韓氏) 사이에서 877년에 태어났으며, 896년에 궁예(弓裔)의 휘하에 들어가 그의 장수 가 되었다. 후백제와의 교전에서 거듭 승리하여 전라도와 경상도 서부 지역에서 견훤의 군사를 여러 번 격파하고 906년 상주의 사화진, 909년 진도 부근의 도서와 나주를 공략하였.. 더보기
궁예, 철원에 도읍을 정하고 후고구려을 건국하다. 궁예 미륵 궁예, 철원에 도읍을 정하고 후고구려을 건국하다. 궁예(弓裔, 869년? 음력 5월 5일? ~ 918년 7월 24일, 재위: 901년 7월 ~ 918년 7월 24일(음력 6월 14일))는 신라의 왕가 서족 (王家 庶族) 출신이며 태봉(후고구려, 마진)의 군주이다. 그는 신라 헌안왕 또는 경문왕과 후궁 사이에 태어난 유복자였다. 장보고의 외손이라는 설도 존재 한다. 그의 본래 속세 성은 김(金)씨, 본관은 경주(慶州), 불교 승려로서의 법명은 선종(善宗)이고, 별명은 미륵(彌勒), 일목대왕 (一目大王)이다. 918년 왕건에게 축출되었으므로 시호는 없다. 신라 왕실의 서자(庶子)로 왕위계승권에서 밀려난 뒤, 유모에 의해 피신되어 죽음을 모면하였고 이후 세달사로 피신하였다 가 신라 말기의 혼란기에 .. 더보기
진덕여왕, 김춘추를 당나라 사신으로 파견하여 나당연합을 체결하다. 진덕여왕 석상 조각 신라 진덕여왕 추정 하반신상의 정면 진덕여왕, 김춘추를 당나라 사신으로 파견하여 나당연합을 체결하다. 진덕여왕(眞德女王, ? ~ 654년, 재위: 647년 ~ 654년)은 신라 제28대 여왕(군주)이다. 성은 김(金), 휘는 승만(勝曼)이다. 진평왕의 동생인 국반 갈문왕(國飯葛文王)과 월명부인(月明夫人)의 딸이다. 사촌 언니인 선덕여왕(善德女王)의 유언에 따라 그녀의 뒤를 이어 즉위한 647년부터 654년까지 재위하는 동안 647년부터 648년 까지 상대등 알천(閼川)이 대리청정하였고 648년부터 654년 붕어할 때까지 친정하였다. 내용 진덕여왕(眞德女王)은 자질이 풍만하고 아름다웠으며 무척 총명했다고 한다. 즉위하던 해(647년)에 선덕여왕 말년에 반란을 일으켰던 비담(毗曇)을 비롯.. 더보기
선덕여왕, 최초의 여왕, 웅대한 호국의 의지가 담긴 거대한 황룡사 9층 목탑을 세우다. 황룡사 9층 목탑 복원도 선덕여왕, 최초의 여왕, 웅대한 호국의 의지가 담긴 거대한 황룡사 9층 목탑을 세우다. 선덕여왕(善德女王, ? ~ 647년 2월 17일 (음력 1월 8일)) 또는 선덕왕(善德王)은 신라의 제27대 군주(재위: 632년~647년)이며, 한국사에서 최초의 여왕으로 알려져 있다. 성은 김(金), 휘는 덕만(德曼)이다. 진평왕과 마야부인(摩耶夫人)의 장녀이며 태종무열왕의 6촌 누나이자 큰이모이다. 632년부터 647년까지 재위하는 동안 632년 을제와 김용춘이 잠시 순차적으로 대리청정하여 국정을 담당했고 같은 해 632년부 터 647년 붕어할 때까지 친정하였다. 생애 《삼국사기》에는 진평왕의 장녀, 《삼국유사》에는 형제자매 서열에 관한 기록 없이 진평왕의 딸로 기록하였다. 진평왕이 아들..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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