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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

무왕, 세력 균형과 중립 외교로 실리청책을 펼치다. 무왕, 세력 균형과 중립 외교로 실리청책을 펼치다. 무왕(武王, ? ~ 641년, 재위 : 600년 ~ 641년 음력 3월) 은 백제의 제30대 국왕이다. 성은 부여(扶餘), 휘는 장(璋), 아명은 서동(薯童) 혹은 일기사덕(一耆篩德)이다. 법왕(法王)의 아들이라는 설과 위덕왕의 아들이라는 설도 존재한다. 재위 기간 신라에 적극적인 공세를 취하는 한편 동아시아의 양대 세력인 고구려와 수나라가 각축전을 벌일 때, 세력 균형과 중립외교를 통해 양쪽의 대결을 이용한 실리정책을 펼쳤다. 이와 더불어 왕권 강화와 왕권의 건재를 과시하려는 목적에서 대규모 역사(役事)를 단행하였다. 630년 사비궁(泗沘宮)을 중수하였으며 익산을 중시해 이 곳에 별도(別都)를 경영하고, 장차 천도(遷都)할 계획까지 세우고 있었다. 또.. 더보기
동성왕, 업적을 남겼지만, 말기에 이르러서는 점차 향락에 빠져 정치를 돌보지 않다. 동성왕, 업적을 남겼지만, 말기에 이르러서는 점차 향락에 빠져 정치를 돌보지 않다. 동성왕(東城王, 445년~501년, 재위 : 479년~501년)은 백제의 제24대 국왕이다. 성은 부여(扶餘), 이름은 모대(牟大)이다. 또 다른 이름은 마모(摩牟)·마제(麻帝)·말다(末多)·여대(餘大)여대(餘大)등이 있다. 제22대 왕인 문주왕(文周王)의 아우인 좌평(佐平) 곤지(昆支)의 둘째 아들로서 담력이 있고 활을 쏘는 솜씨가 뛰어났다. 삼근왕 때 일어난 해구(解仇)의 반란을 평정한 뒤 정권을 잡은 진씨(眞氏) 세력에 의해 옹립되어 삼근왕의 뒤를 이었다. 479년부터 501년까지 재위하는 동안 479년부터 482년까지 진로(眞老)가 실권을 맡았고 482년부터 501년 붕어할 때까지 친정하였다. 생애 동성왕의 본명은.. 더보기
지증왕, 순장법을 금하고 농사를 장려하다. 지증왕, 순장법을 금하고 농사를 장려하다. 지증왕(智證王, 437년 ~ 514년, 재위: 500년 ~ 514년)은 신라의 제22대 왕이다. 내물왕의 증손이며 복호 갈문왕의 손자이자 습보 갈문왕(習寶)의 아들이다. 전임 소지 마립간과는 6촌 형제간이었다. 법흥왕의 아버지로 지증 마립간(智證麻立干)이라고도 한다. 502년 순장법을 금하고 농사를 장려하였으며, 소를 길러 땅을 갈게 하였다. 이듬해 국호를 신라로 정하고, 마립간 대신 중국식 군주의 칭호인 왕의 칭호를 사용하였다. 제도와 체제를 개편, 정비하여 504년 상복법을 제정하였으며, 505년 주, 군, 현을 정하고 각 주에 군주를 두었다. 509년 서울에 동시(東市)를 두었고, 512년 우산국(울릉도)을 정복하였다. 또한 한국의 고대 사회에서부터 전해지.. 더보기
보덕왕, 고안승, 고구려 부흥운동 때 왕으로 추대되다. 보덕왕, 고안승, 고구려 부흥운동 때 왕으로 추대되다. 보덕왕(報德王) 또는 보덕국왕(報德國王) 고안승(高安勝, ?~?, 재위: 670년 ~ ?) 또는 고안순(高安舜)은 고구려의 유민으로 고구려 부흥운동 지도자이다. 670년 고구려의 장군 검모잠이 당나라에 항거하여 고구려 부흥운동을 시작했을 때, 왕으로 추대되었다. 일설에는 보장왕의 서자라는 설과 연정토의 아들이라는 설이 있다. 676년 신라의 삼국통일 이후 683년 문무왕의 누이와 결혼하고 신라의 진골 귀족으로 편입되었다. 생애 초반 안승의 생년월일은 미상이며 출신과 성씨도 미상이다. 안승의 출신에 대해서, 《삼국사기》〈고구려본기〉와 《삼국유사》는 보장왕(寶臧王)의 아들이라 하고, 《삼국사기》〈신라본기〉는 연정토(淵淨土)의 아들이라 하였다. 삼국사기 .. 더보기
김수로왕, 가락국의 초대 국왕 김수로왕, 가락국의 초대 국왕 수로왕(首露王, 42년(임인년) ~ 199년, 재위: 42년 ~ 199년) 또는 김수로(金首露)는 가락국(駕洛國)의 초대 국왕이며, 김해 김씨의 시조이다. 일명 수릉(首陵), 뇌질청예(惱室靑裔)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신라 유리왕 19년(42년) 가락국 북쪽 귀지봉(龜旨峰, 구지봉)에 하늘로부터 떨어진 6개의 금란(金卵)이 모두 변하여 6가야국의 왕이 되었다고 하는데 김수로도 그 가운데 하나로, 김해 김씨의 시조이다. 수장(首長) 구도간(九刀干)들이 왕으로 추대하였으며, 나라를 세워 가락국이라 하였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가락국기에 의하면 하늘에서 내려온 6개의 황금 알 중 가장 먼저 깨어난 9척(약 2m)의 소년이 수로왕이 되었다고 하나, 신라의 최치원은 그가 정견모주라는.. 더보기
김알지, 전설로 전해지는 신라 김씨 왕조의 시조 김알지, 전설로 전해지는 신라 김씨 왕조의 시조 김알지(金閼智, 65년 ~ ?)는 정사가 아닌 전설로 전해지는 신라 김씨 왕조의 시조이다. 탈해 이사금 때 태어났으며 그의 7대손 미추 이사금이 김씨 최초로 왕에 즉위하였다. 정식 역사에서는 실존 인물로 파악하고 있지 않다. 생애 65년 탈해왕이 밤에 금성(金城) 서쪽 시림(始林)의 수풀 속에서 닭 울음 소리를 듣고서 신하 호공(瓠公)을 시켜 가보게 하였다. 금빛의 작은 함이 나뭇가지에 걸려 있고 흰 닭이 그 밑에서 울고 있다고 호공이 보고하자, 왕이 직접 가서 함을 열어보니 용모가 아름다운 사내아이가 나왔다. 이때부터 시림을 계림(鷄林)이라 하고, 아이는 금함에서 나왔으므로 성을 김씨라 하였다. 《삼국사기》 〈미추왕조〉에는 알지가 세한(勢漢)을 낳고 세한.. 더보기
제왕운기, 발해사를 한국사로 인식하다. 제왕운기, 발해사를 한국사로 인식하다. 《제왕운기》(帝王韻紀)는 고려 시대의 학자 이승휴(李承休)가 충렬왕 13년(1287년) 한국과 중국의 역사를 시로 쓴 역사책이다. 상·하 2권으로 출간되었으며, 단군부터 고려 충렬왕까지의 역사를 기술했다. 공민왕 9년(1360년)과 조선 태종 13년(1413년)에 각각 다시 간행되었다. 오늘날 유포된 책은 이 3간본을 영인한 것이다. 강원도 삼척시 미로면 내미로리 두타산 아래의 천은사(天恩寺)에서 저술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구성 《제왕운기》는 상·하 2권으로 되어 있는데, 상권은 중국의 반고(盤古)로부터 금나라까지의 역대 사적을 264구(句)의 ‘7언시’로 읊었고, 하권은 한국의 역사를 다시 1·2부로 나누어, 시로 읊고 주기(註記)를 붙였다. 제1부에는 지리기(.. 더보기
원효, "마음이 나야 모든 사물과 법이 나는 것이요" 원효, "마음이 나야 모든 사물과 법이 나는 것이요" 원효(元曉, 617년 ~ 686년 4월 28일(음력 3월 30일), 경상북도 경산시)는 삼국시대와 신라의 고승이자 철학자, 작가, 시인, 정치인이다. 원효는 법명이고, 속성(俗姓)은 설(薛), 속명은 사(思), 서당(誓幢) 또는 신당(新幢)이며, 별명은 모(毛), 호는 화정(和淨)이다. 아버지는 내말 설담날이며, 태종무열왕의 둘째 사위이고 설총이 그의 아들이다. 별명은 소성거사(小姓居士)이며 이외에도 서곡사미(西谷沙彌), 백부논주(百部論主), 해동법사(海東法師), 해동종주(海東宗主)라 불렸다. 고려시대에는 원효보살, 원효성사(元曉聖師)라 존칭되고, 화쟁국사(和諍國師)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본명은 설사(薛思)이나, 보통 한국에서는 법명을 따라 원효대사로..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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