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반응형

연산군

창덕궁, 희정당, 한식과 서양식이 어우러진 건물 창덕궁, 희정당, 한식과 서양식이 어우러진 건물 희정당은 본래 침전으로 사용하다가, 조선 후기부터 임금님의 집무실로 사용하였다. 건물을 지은 시기는 확실하지 않으나, 조선 연산군 2년(1496)에 수문당이라는 건물이 소실되어 이를 다시 지으면서 이름을 희정당이라 부르게 되었다. 그 후 몇 차례의 화재로 다시 지었는데 지금 있는 건물은 일제강점기인 1917년에 불에 탄 것을 경복궁의 침전인 강녕전을 헐어다 1920년에 지은 것이다. 규모는 앞면 11칸·옆면 4칸으로 한식건물에 서양식 실내장식을 하고있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앞면 9칸·옆면 3칸을 거실로 하고 주위는 복도로 사용하였다. 앞면 9칸 중 3칸은 응접실이며 서쪽은 회의실로 꾸미고, 동쪽은 여러 .. 더보기
노국공주, 고국을 배척하고 공민왕의 반원정책을 지지하다. 노국대장공주, 고국을 배척하고 공민왕의 반원정책을 지지하다. 노국대장공주 패아지근씨(魯國大長公主 孛兒只斤氏, ? ~ 1365년 3월 8일(음력 2월 16일))는 고려 공민왕의 적후(嫡后)이다. 원 순종(元 順宗·추존)의 손자인 위왕(魏王) 베이르 테무르(孛羅 帖木兒)의 딸로, 본명은 보르지긴 보타슈리이다. 공민왕이 지어준 고려식 이름은 왕가진(王佳珍)이다. 1365년(공민왕 19년)에 난산으로 사망했다. 시호는 처음 인덕공명자예선안왕태후(仁德恭明慈睿宣安王太后)를 내렸다가 차후 원에서 내린 휘의노국대장공주(徽懿魯國大長公主)로 교체토록 하고, 결국 이를 합성해 인덕공명자예선안휘의노국대장공주(仁德恭明慈睿宣安徽懿魯國大長公主)로 했다. 우왕 때는 인덕태후(仁德太后)라 했다. 올바른 호칭은 아니지만 이 때문에 인덕.. 더보기
중종반정, 신하들이 주체가 되어 왕위를 교체하다. 중종반정, 신하들이 주체가 되어 왕위를 교체하다. 중종반정(中宗反正)은 1506년 9월 18일(음력 9월 2일) 연산군이 폐위되고 진성대군 이역(李懌)이 옹립된 사건을 말한다. 연산군은 무오사화와 갑자사화를 일으켜 많은 선비들을 제거하였다. 또한 경연(經筵) 폐지·신언패(愼言牌) 실시·성균관(成均館)의 연락(宴樂) 장소화·도성 밖 30리 내의 민가 철거·언문 도서의 폐기 등 폭정을 일삼았다. 그리고 원각사를 폐하여 연방원(聯芳院)으로 고치고, 흥청(興淸)들과 기거를 함께하며, 채청사(採靑使)를 각 지방에 보내 미녀를 끌어들이고, 유희와 안락으로 세월을 보내며 국정을 도외시하자, 이에 훈구 세력을 중심으로 반정의 움직임이 싹트기 시작하였다. 전 이조참판(吏曹參判) 성희안은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박원종, .. 더보기
폐비 윤씨, 성종의 용안에 상처를 내어 폐비가 되다. 폐비 윤씨, 성종의 용안에 상처를 내어 폐비가 되다. 폐비 윤씨(廢妃 尹氏, 1455년 7월 15일 (음력 윤 6월 1일) ~ 1482년 8월 29일 (음력 8월 16일))는 조선의 제9대 왕 성종의 계비이 며 둘째부인이다. 조선 10대 왕 연산군과 대군을 낳았으므로 두아들에겐 생모가 된다. 1473년 성종의 후궁으로 간택되어 숙의(淑儀)에 지위에 있다가 공혜왕후가 죽자 왕비(王妃)로 책봉되었으나 남편 용안에 상처 를 내어 폐비(廢妃)당했다. 그러나 연산군 즉위후 제헌왕후(齊獻王后)로 왕비(王妃)의 작호가 추존되었다. 봉상시 판사(奉常寺 判事) 윤기견(尹起畎, 또는 윤기무, 尹起畝) 와 장흥부부인 신씨(長興府夫人 申氏)의 딸로 윤관의 11대손 이다. 본관은 함안(咸安)이다. 남편인 성종의 후궁들 문제로 .. 더보기
조의제문, 김종직 세조의 왕위 찬탈을 비꼬다. 조의제문, 김종직 세조의 왕위 찬탈을 비꼬다. 조의제문(弔義帝文)은 조선 시대 성리학자 김종직(金宗直, 1431년 ~ 1492년)이 지은 제사문으로 항우에게 살해당하여 물에 던져진 회왕 즉, 초 의제를 추모하는 글이다.김종직은 조선의 성리학자로 1459년 세조 5년에 과거에 합격하여 1489년 성종 20년 이르러서는 중용되어 형조판서까지 벼슬을 하였다.1492년 김종직이 죽은 지 6년 후 1498년 연산군 4년에 제자 김일손이 사관으로 있으면서 이것을 성종실록 사초에 적어 넣은 것이 원인이 되어 무오사화가 일어났다. 내용은 항우에게 살해당하여 물에 던져진 회왕 즉, 의제(義帝)를 조상한다는 제문이었지만, 세조의 왕위 찬탈을 비꼬는 내용으로, 살해당하여 물에 던져진 단종에 대한 상황 묘사와 유사한 면이 있.. 더보기
연산군, 정사를 독단적으로 처리하다. 중종 반정으로 폐위되다. 연산군, 정사를 독단적으로 처리하다. 중종 반정으로 폐위되다. 연산군(燕山君, 1476년 11월 23일 (음력 11월 7일) ~ 1506년 11월 20일 (음력 11월 6일), 재위 1494년 ~ 1506년)은 조선의 제10대 임금이다. 성은 이(李), 휘는 융(㦕), 본관은 전주(全州) . 성종의 장남으로 폐비 윤씨의 소생이며, 비는 영의정 신승선(愼承善)의 딸이다. 모후 폐비 윤씨의 폐출 이후 정현왕후의 손에 자랐으나, 자신의 생모가 폐비 윤씨임을 알았다. 그 뒤 어머니 폐비 윤씨를 왕비로 추숭하려 하자, 성종의 유명을 내세워 왕비 추숭을 반대한 사림파 문인들과 충돌하다가 무오사화와 갑자사화를 빌미로 사림파를 제거했다. 또한 폐비 윤씨 사사 사건을 빌미로 발생한 갑자사화에서는 사림파와 양대 파벌을 이.. 더보기
조선의 왕, 세자 책봉 조선의 왕, 세자 책봉 서울대학교 박물관 소장 왕위를 계승할 자, 세자 조선시대 왕위 계승의 원칙에는 두 가지가 있었습니다. 첫째, 중전의 몸에서 태어난 첫째 아들이 왕위를 계승해야 하는 것이고, 둘째, 왕이 될 사람은 덕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원칙이었습니다. 이 두 조건을 만족시키는 왕손은 '대를 이을 아들'이라는 의미의 세자(世子)로 책봉되어, 후계자로서의 준비에 만전을 기울여야 했습니다. 조선 27대 왕 중에 위의 적장자 원칙에 따라 세자 책봉을 받고 왕위에 오른 임금은 문종, 단종, 연산군, 인종, 현종, 숙종, 순종 7명입니다. 적장자는 아니지만 그 덕을 인정받거나 중전에게 아들이 없어 후궁의 아들이나 왕족으로서 왕위에 오른 임금은 19명입니다. 의경세자(덕종), 순회세자, 소현세자, 효명세자(.. 더보기
경회루, 흥청망청의 발원지 경회루, 흥청망청의 발원지 세종의 뒤를 이은 병약한 문종이 단명을 하자 수양대군은 1453년 10월 10일 불시에 김종서의 집을 습격하여 그와 그의 아들 둘을 죽였습니다. 이어 단종의 명이라고 속여 중신들을 모이게 한 후 궐문 안에서 입궐하는 중신들을 차례대로 죽였지요. 수양대군은 정변으로 반대파를 숙청하고 정권을 장악했습니다. 이 정변을 계유정난 이라고 합니다. 보통, 계유년에 일어난 란 이라는 뜻으로 잘못알고 있지요. '계유년의 어려움을 안정시켰다' 라는 뜻입니다. 세조 측의 입장에서 이름을 붙인 것 같습니다. 그 후 2년 뒤 단종은 상왕으로 물러나고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옥새를 넘기게 됩니다. 그 곳이 바로 경회루 입니다. 잠시, 그 날로 돌아가 생각해 볼까요? 어린 단종은 숙부인, 수양대군이 무서웠.. 더보기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