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치원, 당의 빈공과에 장원으로 급제하다.
최치원, 당의 빈공과에 장원으로 급제하다. 최치원(崔致遠, 857년 ~ ?)은 신라 말기의 문신, 유학자, 문장가이다. 자는 고운(孤雲), 해운(海雲), 해부(海夫)이며, 시호는 문창(文昌)이다.6두품 출신으로서 12세의 나이로 당에 유학하여 6년 만에 당의 빈공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였으며, 황소의 난이 일어나자 절도사 고병의 막하에서 《토황소격문》을 지어 당 전역에 문장으로 이름을 떨쳤고, 승무랑 시어사로서 희종 황제로부터 자금어대를 하사받았다. 귀국하여 헌강왕으로부터 중용되어 왕실이 후원한 불교 사찰 및 선종 승려의 비문을 짓고 외교 문서의 작성도 맡았으며, 시무 10여 조를 올려 아찬 관등을 받았다. 그러나 진골 귀족들이 득세하며 지방에서 도적들이 발호하는 현실 앞에서 자신의 이상을 채 펼쳐보지도 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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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상, 왕족 출신의 고승, 화엄종의 시조이며 부석사를 창건하다.
의상, 왕족 출신의 고승, 화엄종의 시조이며 부석사를 창건하다. 의상(義湘, 625년 ~ 702년)은 고대 통일신라시대 중기의 왕족 출신, 고승이다. 또한, 통일신라시대 초기의 작가이자 철학자이기도 했다. 그는 중국 당나라에 유학하여 지엄(至嚴)으로부터 화엄종(華嚴宗)을 수학하고 법통을 받아 중국 화엄종의 제3 세조가 되었다. 또한, 한국 화엄종(華嚴宗)의 시조이며, 속성은 김(金: 혹은 박(朴)씨라고 함)이다. 시호는 해동화엄시조원교국사(海東華嚴始祖圓敎國師)이다. 20세에 출가하여 650년(진덕여왕 4년)에 사형(師兄)인 원효(元曉)와 함께 당나라에 가던 도중에 난을 당해 이루지 못하고, 경상북도 문경의 어느 동굴에서 유숙하게 되었다. 이때 해골에 괸 물을 마신 원효는 도의 길이 따로 있지 않다고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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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 "마음이 나야 모든 사물과 법이 나는 것이요"
원효, "마음이 나야 모든 사물과 법이 나는 것이요" 원효(元曉, 617년 ~ 686년 4월 28일(음력 3월 30일), 경상북도 경산시)는 삼국시대와 신라의 고승이자 철학자, 작가, 시인, 정치인이다. 원효는 법명이고, 속성(俗姓)은 설(薛), 속명은 사(思), 서당(誓幢) 또는 신당(新幢)이며, 별명은 모(毛), 호는 화정(和淨)이다. 아버지는 내말 설담날이며, 태종무열왕의 둘째 사위이고 설총이 그의 아들이다. 별명은 소성거사(小姓居士)이며 이외에도 서곡사미(西谷沙彌), 백부논주(百部論主), 해동법사(海東法師), 해동종주(海東宗主)라 불렸다. 고려시대에는 원효보살, 원효성사(元曉聖師)라 존칭되고, 화쟁국사(和諍國師)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본명은 설사(薛思)이나, 보통 한국에서는 법명을 따라 원효대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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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준경, "죄는 중하나 또한 공도 적지않다."
척준경, "죄는 중하나 또한 공도 적지않다." 척준경(拓俊京, ? ~ 1144년 음력 2월)은 고려 중기의 무신, 정치인, 군인이며, 황해도 곡주(谷州: 황해북도 곡산군) 출신이다. 1104년(숙종 9)부터 1109년까지 윤관, 오연총, 왕자지 등과 함께 함경도에 침입한 여진족을 몰아내고 동북 9성을 쌓는데 기여하였다. 뛰어난 용맹으로 여진족 정벌에 종군하여 많은 공을 세웠으나, 이자겸(李資謙)과 함께 전횡을 일삼아 나라를 어지럽게 만들었다. 곡산 척씨(谷山拓氏) 가문의 시조이며, 검교대장군(檢校大將軍) 척위공(拓謂恭)의 아들이다. 척준경은 인종(仁宗)이 등극한 후 권력을 잡은 이자겸을 돕게 되며, 이유는 명확치 않으나, 이자겸의 다섯째 아들인 이지원(李之元)이 척준경의 사위인 것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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