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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다구치 렌야, 버마 전선에서 무리한 임팔 작전을 강행하여 파국적인 결과를 초래하다. 무타구치 렌야, 버마 전선에서 무리한 임팔 작전을 강행하여 파국적인 결과를 초래하다. 무타구치 렌야 (일본어: 牟田口 廉也 (むたぐち れんや), 1888년 10월 7일 ~ 1966년 8월 2일)은 태평양 전쟁에서 활약한 일본의 육군 군인이다. 그는 1944년 버마 전선에서 무리한 임팔 작전을 강행하여 파국적인 결과를 초래해 유명해졌다. 사가 현 출신으로, 1910년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1917년 고급 참모과정인 육군대학교를 졸업하였다. 그는 일본이 러시아 혁명에 간섭한 시베리아 출병에 참전하였고, 이후 프랑스에 주재무관으로 파견되었다. 소좌시절에는 캄차카 반도에 잠입하여 홀로 종단하여 정탐활동을 벌이기도 하였다. 이후 일본에 돌아와 참모본부에서 일하다가 1936년 중국에 파견되어 베이징에 주둔중인 .. 더보기
강릉 명종의 묘, 소윤과 문정왕후의 권세에 눌려 뜻을 펴보지 못하다. 강릉 명종의 묘, 소윤과 문정왕후의 권세에 눌려 뜻을 펴보지 못하다. 위치 : 서울 노원구 화랑로 681 능의 형식 : 쌍릉 능의 조성 : 1567년(선조 즉위), 1575년(선조 8) 능의 구성 강릉은 조선 13대 명종과 인순왕후 심씨의 능이다. 강릉은 같은 언덕에 왕과 왕비의 봉분을 나란히 조성한 쌍릉의 형식으로 정자각 앞에서 바라보았을 때 왼쪽이 명종, 오른쪽이 인순왕후의 능이다. 전체적인 능침은 문정왕후의 태릉과 같은 형태로 조성하여, 봉분에는 병풍석과 난간석을 모두 둘렀고, 장명등, 혼유석, 망주석, 석양, 석호, 석마, 문무석인 등을 배치하였다. 능침아래에는 홍살문, 향·어로, 정자각, 비각이 있고, 정자각 왼편에는 둥근 어정(御井)이 있다. 어정이란 왕이 마실 물을 위해 판 우물을 말한다. .. 더보기
관우, 충성심과 의리, 당당한 성품으로 동아시아에서 가장 잘 알려진 장수 관우, 충성심과 의리, 당당한 성품으로 동아시아에서 가장 잘 알려진 장수 관우(? ~ 219년 음력 12월)는 중국 후한 말의 무장으로, 자는 운장(雲長)이며 사례(司隷) 하동군(河東郡) 해현(解縣) 사람이다. 의제 장비(張飛)와 더불어 유비(劉備)를 오랫동안 섬기며 촉한(蜀漢) 건국에 지대한 공로를 세웠다. 충성심과 의리, 당당한 성품으로 인해 동아시아에서 가장 잘 알려진 장수로 손꼽히며, 한대(漢代) 이후로 남송(南宋)의 악비(岳飛)가 등장하기 이전까지 각 중국 사서(史書)에 등장하는 후세사람들은 '용맹한 자' 에 대해 이야기할 때 '반드시' 관우(關羽), 장비(張飛)의 경우를 들어 말하였다고 한다. 의리(義理)의 화신(化身)으로 중국의 민담(民譚)이나 민간전승(民間傳承), 민간전설(民間傳說)에서 널.. 더보기
예쁜 사진 배경화면 낙엽, 풍선, 선물 사진 예쁜 사진 배경화면 낙엽, 풍선, 선물 사진 더보기
유비, 현덕 말수가 적었으며 늘 남을 공손히 대하고 감정을 드러내지 않다. 유비, 현덕 말수가 적었으며 늘 남을 공손히 대하고 감정을 드러내지 않다. 한 소열황제 유비(漢 昭烈皇帝 劉備, 161년 음력 6월 7일 ~ 223년 음력 4월 24일, 양력 6월 10일)는 중국 삼국시대 촉한의 초대 황제(재위: 221년 음력 4월 6일 ~ 223년 음력 4월 24일)이다. 자는 현덕(玄德)이다. 유비가 황제로 즉위하기 전에는 한나라의 황실 성씨였으므로 유황숙(劉皇叔)이라고도 불렸다. 아버지를 일찍 여읜 유비는 어머니와 돗자리를 짜고 팔아 연명하였는데, 청년 후반대 시절 황건적의 난이 일어났을때 분연히 들고 일어나 동리에서 의병을 모집하였으니, 이것이 그의 파란만장한 격동 후반생의 시작이었다. 유비의 생애 유비는 탁군 탁현(지금의 허베이 성 바오딩 시 줘저우 시)이 고향인 사람으로, '.. 더보기
헌덕왕, 당에 정기적으로 조공을 행하다. 헌덕왕, 당에 정기적으로 조공을 행하다. 헌덕왕(憲德王, ? ~ 826년, 재위: 809년 ~ 826년)은 신라의 제41대 왕이다. 성은 김씨(金氏)이고 이름은 언승(彦昇)이고, 신라 원성왕의 장남인 김인겸의 차남으로 소성왕의 동생이다. 즉위 전 원성왕 6년(790년)에 사자로서 당나라로 갔고, 귀국후에 대아찬이 되었다. 다음 791년 전 시중 제공(悌恭)의 반란 진압에 공적을 세었고, 794년에는 당시 시중 김숭빈(金崇斌)이 물러나고 언승이 시중에 발탁 되었다. 795년에는 이찬, 796년에는 병부령(兵部令)을 거치고, 800년에 애장왕이 즉위 하면서 그 섭정이 되었다. 게다가 801년에는 왕의 행차를 총괄하는 책임자가 되어, 그 다음에는 상대등이 되었다. 809년 7월 동생과 함께 애장왕을 죽이고, .. 더보기
소성왕 신라 39대왕과 애장왕 신라 40대왕 소성왕 신라 39대왕과 애장왕 신라 40대왕 소성왕 소성왕(昭聖王, ? ~ 800년, 재위: 798년 ~ 800년)은 신라의 제39대 왕이다. 성은 김씨(金氏)이고, 이름은 준옹(俊邕)이다. 소성왕(昭成王)이라고도 한다. 원성왕의 장손이다. 아버지는 원성왕의 장남인 인겸(仁謙, 惠忠太子)이며, 어머니는 성목태후(聖穆太后) 김씨이다. 생애 아버지가 태자로 죽었으므로 궁중에서 자라서 789년에 당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왔다. 그 후 대아찬이 되고 시중 등을 거쳐 이듬해 병부령이 되었다. 795년 태자로 책봉되어 왕위에 올랐다. 당의 덕종으로부터 개부의동삼사 검교대위 신라왕에 책봉되었다. 재위 2년 만에 죽어 이후로 신라 왕위 쟁탈전의 원인이 되었다. 애장왕 애장왕(哀莊王, 788년 ~ 809년, 재위: 800년.. 더보기
효릉 인종의 묘, 조선 역대 국왕 중 재위기간이 가장 짧은 9개월의 기간을 재위하다. 효릉 인종의 묘, 조선 역대 국왕 중 재위기간이 가장 짧은 9개월의 기간을 재위하다. 위치 : 경기 고양시 덕양구 서삼릉길 233-126 능의 형식 : 쌍릉 능의 조성 : 1545년(명종 즉위), 1578년(선조 11) 능의 구성 효릉은 조선 12대 인종과 인성왕후 박씨의 능이다. 효릉은 같은 언덕에 왕과 왕비의 봉분을 나란히 조성한 쌍릉의 형식으로 정자각 앞에서 바라보았을 때 왼쪽이 인종, 오른쪽이 인성왕후의 능이다. 진입 및 제향공간에는 홍살문, 판위, 향로와 어로, 정자각, 비각이 배치되어 있다. 인종의 능침은 『국조오례의』의 형식에 따라 병풍석과 난간석을 둘렀다. 효릉 조성 당시에는 병풍석이 없었으나 1578년(선조 11)에 인성왕후의 능을 조성할 때 병풍석을 추가로 설치하였다. 인성왕후의 능침은..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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