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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

순헌황귀비 엄씨, 고종의 시중을 들다 총애를 받아 영친왕 은을 출산하다. 순헌황귀비 엄씨, 고종의 시중을 들다 총애를 받아 영친왕 은을 출산하다. 순헌황귀비 엄씨(純獻皇貴妃 嚴氏, 1854년 2월 2일/음력 1월 5일 ~ 1911년 7월 20일)는 대한제국 황제 고종의 후궁이다. 대한제국 성립 이후 황비로 책봉되었다. 8세에 입궐하여 을미사변 직후 고종의 시중을 들다 총애를 받아 영친왕 은을 출산하고 이후 상궁에서 귀인으로, 순빈을 거쳐 순비가 되었다가 1903년에는 황귀비가 된다. 일설에는 계비란 말을 쓰기도 하는데 계비란 정식으로 책봉된 두 번째 정궁(正宮)를 가리키는 말이므로 황후가 아닌 황귀비에 책봉된 순헌황귀비에게는 옳지 않은 칭호이다. 본관은 영월이며 1854년 1월 5일 서울에서 증찬정(贈贊政) 엄진삼(嚴鎭三)의 맏딸로 태어났다. 1905년 양정의숙(현 양정고등학.. 더보기
만민공동회, 박성춘, 시민들의 주장과 힘을 보여준 대중운동 만민공동회, 박성춘, 시민들의 주장과 힘을 보여준 대중운동 만민공동회(萬民共同會) 또는 관민공동회(官民共同會)는 조선말, 대한제국의 대토론회, 시민운동이자 시민사회단체로 독립협회에서 처음 주관하였다가 1898년 4월을 기점으로 독립협회의 영향력에서 독자적인 민중대회, 단체로 성장했다. 1897년(광무 1년) 초 독립협회의 서재필, 윤치호, 이상재 등에 의해 처음 시작되었다. 만민공동회는 독립협회 주최하에 민중대회로 처음 개최되었으며, 한성부의 시민, 소상인, 일부 지식인층이 참여했다. 이후 1897년 10월 박정양을 비롯한 정부의 개혁적 관료들과 독립협회가 함께 주관하면서 범국민적인 대회, 단체로 성장했다. 정부 측의 박정양, 이상재, 독립협회 측의 서재필, 윤치호 등이 이를 지도하였다. 만민공동회는 처.. 더보기
영친왕, 의민태자, 조국 광복을 위해 노력하지 않다. 영친왕, 의민태자, 조국 광복을 위해 노력하지 않다. 의민태자(懿愍太子, 1897년 10월 20일 ~ 1970년 5월 1일)는 대한제국의 황태자이자 일본 제국의 군인이다. 성과 휘는 이은(李垠), 아명은 유길(酉吉), 자는 광천(光天), 아호는 명휘(明暉), 명신재(明新齋)이며, 본관은 전주이다. 사후에 전주이씨대동종약원에서 문인무장지효명휘의민황태자(文仁武莊至孝明暉懿愍皇太子)라는 시호를 올렸으나 정식 시호가 아닌 사시이다. 황태자로 책봉되기 이전의 작호인 영친왕(英親王)으로도 알려져 있다. 조선의 제26대 왕이자 대한제국의 초대 황제 고종의 일곱째 아들이며, 어머니는 순헌황귀비 엄씨이다. 순종과 의친왕, 덕혜옹주와는 이복 형제이다. 1897년에 경운궁 숙옹재에서 태어나 의친왕을 제치고 병약하여 아들이 없.. 더보기
민영익, 김옥균·서광범 등을 암살하기 위하여 자객을 밀파하다. 민영익, 김옥균·서광범 등을 암살하기 위하여 자객을 밀파하다. 민영익(閔泳翊, 1860년~1914년 중국 상하이)은 조선의 정치인이다. 처음에는 온건 개화파 정치인이었다가 갑신정변 전후로는 조선 말기 민씨 외척 정권의 주요 인물이 되었다. 명성황후의 친정 일족이었다. 자(字)는 우홍(遇鴻), 호는 운미(雲楣) 또는 죽미(竹楣)·원정(園丁)·천심죽재(千尋竹齋)이며, 본관은 여흥이다. 경기도 출신 출생과 가계 민영익은 1860년 민태호의 독자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7대조 민유중의 딸이 숙종 계비로 책봉되면서 중앙 정계의 핵심 세력으로 떠올랐지만, 고조부가 예조판서를 지낸 이후로는 권력에서 점차 소외되었다. 민영익이 태어났을 때, 민태호는 동생 집에 얹혀살면서 콩죽으로 간신히 연명하는 처지였다. 흥선대원군.. 더보기
통리기무아문, 최초의 근대적 기구 통리기무아문, 최초의 근대적 기구 통리기무아문(統理機務衙門)은 1880년(고종 17년)에 설치된 관청이다. 조선 최초의 근대적 기구이다. 임오군란으로 인해 1882년(고종 19년) 6월에 폐지되었다. 설치 이전 문호개방 후 조선 정부는 개화정책의 일환으로 행정기구의 개혁에 착수했다. 1880년 12월에 서양 국가들과의 외교ㆍ통상에 대비하여 대외정책을 담당함과 동시에 국가의 재정ㆍ군사 업무를 맡아볼 기구로서 통리기무아문을 설치하기에 이르렀다. 통리기무아문 이 기구는 청나라의 총리각국사무아문(總理各國事務衙門)을 본뜬 것으로서, 정부가 대외 개방을 통해 서구의 문화와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겠다는 의도를 공식적으로 천명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 밑에 12사를 두어 사무를 분담하게 했는데, 그 장관을 총리대.. 더보기
이회영, 고종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고종 망명 계획은 실패로 돌아가다.(3) 이회영, 고종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고종 망명 계획은 실패로 돌아가다. 신흥무관학교 활동 1912년 독립군지도자양성을 목적으로 신흥강습소(新興講習所, 신흥무관학교의 전신)를 설립하였다. 1912년 경학사를 만주 통화현(通化縣) 합니하반(哈泥河畔)으로 옮겼다가, 경학사를 모체로 신흥무관학교(新興武官學校)를 건립하여 독립군 병사 양성을 도모하였다. 그러나 이해 흉작으로 경학사를 해산하고 국내로 들어와 독립군기지 건설을 위한 군자금 모집에 진력했다.1913년부터 1919년까지 이회영은 극비리에 국내에 잠입하여 여러 인사와 접촉하였으나 극비리에 추진된 탓에 현재까지 이 기간동안 그의 자세한 행적이 전해져 내려오지않고 있다. 1917년 아들 이규학(李圭鶴)이 고종황제의 조카딸과 신부례를 올리는 기회를 엿보아 고종.. 더보기
덕혜옹주, 고종황제와 귀인 양씨 사이에서 태어난 고명딸 덕혜옹주, 고종황제와 귀인 양씨 사이에서 태어난 고명딸 덕혜옹주(德惠翁主, 1912년 5월 25일 ~ 1989년 4월 21일)는 조선의 제26대 왕이자 대한제국의 초대 황제였던 고종과 귀인 양씨 사이에서 태어난 고명딸이다. 황녀로서 덕혜라는 호를 하사받기 전까지 ‘복녕당 아기씨’로 불렸고, 1962년 ‘이덕혜’(李德惠)로 대한민국의 국적을 취득하였다.일제 강점기 경기도 경성부 덕수궁에서 태어나 경성일출공립심상소학교 재학 중에 일본의 강제적인 요구에 따라 유학을 명분으로 도쿄로 보내져 일본 황족들이 공부하는 학교인 여자 가쿠슈인에서 수학하였다. 1931년 옛 쓰시마 번주 가문의 당주이자 백작 소 다케유키와 정략 결혼을 하여 1932년 딸 소 마사에를 낳았다. 그러나 이즈음 조울증, 우울장애, 반복성 우울 .. 더보기
섭정, 국왕을 대신해 통치권을 받아 국가를 다스리다. 섭정, 국왕을 대신해 통치권을 받아 국가를 다스리다. 섭정(攝政)은 군주가 통치하는 국가에서 군주가 어려서 정무를 수행할 능력이 없을 때 또한 군주가 병으로 정사를 돌보지 못 할 때 국왕을 대신해서 통치권을 받아 국가를 다스리던 사람이나 그 일을 가리킨다. 동양에서는 황태자나 왕세자가 다스리는 것과 대리청정, 황태후나 대왕대비 등 여자들이 다스리는 것은 수렴청정 그리고 신 하 중 고명대신인 대신이 다스리는 것 또는 그 대신을 섭정승(攝政丞)이라 한다. 조선에서는 섭정이라는 용어가 거의 쓰이지 않고, 수렴청정과 대리청정이라는 말이 주로 쓰였다. 동양에서는 다음과 같은 때에 섭정이 이루어졌다. 조선 : 종의 대왕대비인 정희왕후 윤씨, 고종의 대왕대비인 신정황후 조씨 (그러나 실제 정사는 흥선대원군이 돌보았다..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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