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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조, 중종은 조광조의 시험 답안에 감격하여 그를 선발하다. 조광조, 중종은 조광조의 시험 답안에 감격하여 그를 선발하다. 조광조(趙光祖, 1482년 8월 23일/음력 8월 10일 ~ 1520년 1월 10일/1519년 음력 12월 20일)는 조선의 문신, 사상가이자 교육자, 성리학자, 정치가이다. 본관은 한양(漢陽), 자는 효직(孝直), 호는 정암(靜庵)이다. 김종직의 학통을 이어받은 김굉필의 문하에서 수학하다 유숭조의 문하에서도 수학했다. 사림파의 정계 진출을 확립하였다. 중종의 훈구파 견제 정책에 의해 후원을 받아 홍문관과 사간원에서 언관 활동을 하였고, 성리학 이론서 보급과 소격서 철폐 등을 단행하였다. 성리학적 도학 정치 이념을 구현하려 했으나 훈구 세력의 반발로 실패한다. 1519년 반정공신들의 사주를 받은 궁인들에 의해 나뭇잎에 주초위왕(走肖爲王)이란 .. 더보기
자제위, 젊고 외모가 잘생긴 청년을 뽑아 좌우에서 시중을 들게 하다. 자제위, 젊고 외모가 잘생긴 청년을 뽑아 좌우에서 시중을 들게 하다. 자제위(子弟衛)는 고려 공민왕이 1372년 설치하여 젊고 외모가 잘생긴 청년을 뽑아 이 곳에 두고, 좌우에서 시중을 들게 한 기관이다. 1374년 9월에 공민왕이 홍륜(洪倫), 최만생(崔萬生) 등 자제위(子弟衛) 소속의 미소년들을 궁중에 출입하게 하여, 그들과 동성애를 즐겼다는 주장이 있다. 또한 공민왕의 지시에 따라 공민왕의 후궁과 성관계를 맺게 했다는 조선측의 기록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서술은 조선왕조 개창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왜곡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홍륜은 공민왕의 후궁이었던 익비(益妃)와 간통하여 임신시켰는데 이를 최만생이 은밀히 공민왕에게 보고하였다. 공민왕은 "이 사실을 아는 자를 모두 죽여야겠다"고 .. 더보기
홍륜, 최만생을 비롯한 자제위가 모의하여 공민왕을 시해하다. 홍륜, 최만생을 비롯한 자제위가 모의하여 공민왕을 시해하다. 홍륜(洪倫, ? ~ 1374년)은 고려 후기의 인물로 본관은 남양(南陽)이며, 홍언박의 손자이자 홍사우의 아들이다. 1372년에 설치된 자제위에 소속되어 공민왕을 보필하는 한편 공민왕이 후사를 보기 위해 자제위에 소속된 청년들을 비빈들과 사통시켰는데 홍륜 또한 공민왕의 셋째 부인인 덕풍군의 딸 익비 한씨와 관계를 맺었다. 이후 임신한 사실이 최만생에 의해 공민왕에게 알려지고 공민왕은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이를 전부 죽일 것이라고 말하자 겁을 먹은 최만생이 홍륜에게 이 사실을 전하고 홍륜과 최만생을 비롯한 자제위가 모의하여 공민왕을 시해하였다. 이후 이인임에 의해 공민왕을 시해한 것이 발각되면서 처형당했다. 생애 본관은 남양 홍씨(南陽 洪氏) 공.. 더보기
용비어천가, 한글 창제 후 첫 시험으로 이루어진 최초의 한글 문헌이며 악장이다. 용비어천가, 한글 창제 후 첫 시험으로 이루어진 최초의 한글 문헌이며 악장이다.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는 조선 세종 때 권제와 정인지, 안지 등이 세종의 명을 받아 지은 악장·서사시이다. 정인지와 안지, 권제 등이 짓고, 성삼문과 박팽년, 이개 등이 주석, 정인지가 서문을 쓰고 최항이 발문(跋文)하였다. 1445년(세종 27년)에 지어 1447년(세종 29년)에 간행하였다. 한글 창제 후 첫 시험으로 이루어진 최초의 한글 문헌이며 악장이다. 모두 125장으로 조선 개국의 위대함과 시련을 노래했고, 그것이 하늘의 명에 따라 이루어졌다고 강조했다. 내용은 목조·익조·도조·환조·태조·태종 등 조선의 선대인 6대에 걸쳐 그 사적을 노래했다. 제1장, 제125장 등 10여 장을 제외하고는 모두 각 장이 2절로.. 더보기
집현전, 서적을 편찬 간행하여, 한국 문화사상 황금시대를 이루게 하다. 집현전, 서적을 편찬 간행하여, 한국 문화사상 황금시대를 이루게 하다. 집현전(集賢殿)은 정이품아문으로, 고려 말 조선 초의 학문 연구 및 국왕의 자문 기관이자, 왕실 연구기관이다. 중국에서는 한나라·위나라 이래 설치되어, 당나라 현종(玄宗) 때 완비된 기관으로서 이곳에 학사(學士)를 두어 경적(警籍)의 간행과 서적의 수집 등을 맡아 보게 하였다. 한국에도 옛날부터 이 제도가 수입되어 많은 영향을 끼쳤으나, ‘集賢殿’(집현전)이란 명칭이 사용된 것은 1136년(고려 인종 14)에 연영전(延英殿)을 집현전이라 개칭한 데서 비롯한다. 그러나 고려 때와 조선의 건국 초기까지에도 별다른 활동은 없었다. 1356년(공민왕 5년) 고려 공민왕이 집현관과 우문관을 없애고, 수문전·집현전 학사를 두었다고 한다. 이후에.. 더보기
박팽년, 사육신 중 하위지와 함께 유일하게 친 후손이 존재하다. 박팽년, 사육신 중 하위지와 함께 유일하게 친 후손이 존재하다. 박팽년(朴彭年, 1417년 ~ 1456년)은 조선 전기의 문신 겸 학자로 사육신의 한 사람이다. 본관은 순천(順天). 자(字)는 인수, 호는 취금헌(醉琴軒), 시호는 충정(忠正)이다. 문과에 급제하여 집현전의 학사로 활동했고, 관직은 형조 참판에 이르렀다. 손자 박일산이 생존하여 사육신 중 하위지가와 함께 후손이 전한다. 중종 때의 권신 박원종의 일족이기도 하다. 생애 조선 세종 때인 1434년, 문과에 급제하여 성삼문 등과 함께 집현전 학사가 되어 편찬 사업에 참가하였고 세종의 총애를 받았다. 황보인·김종서 등과 함께 문종과 단종을 보필하였다. 세종 말년에 신숙주, 성삼문, 윤기견, 윤회, 김종서 등과 고려사절요, 고려사의 편찬과 간행에 .. 더보기
이징옥의 난, 계유정난을 일으킨 것에 대한 반발로 군사를 일으키다. 이징옥의 난, 계유정난을 일으킨 것에 대한 반발로 군사를 일으키다. 이징옥의 난(李澄玉-亂)은 함길도 도절제사 이징옥이 수양대군 일파의 권력 장악과 자신의 파직에 대해 불만을 품고 여진족 등과 함께 일으킨 반란이다. 1453년(단종 1년) 이징옥이 함길도 도절제사(都節制使)로부터 파직되자 스스로 대금황제(大金皇帝)라 칭하고 여진에 도움을 청하여 반란을 일으킨 사건이다. 그러나 정종(鄭種), 이행검 등의 습격으로 이징옥이 살해되어 실패로 끝났다. 후일 채제공은 그가 단종을 위해 군사를 일으킨 것이므로 역모는 아니라고 하였으며, 계유정난을 일으킨 것에 대한 반발로 이징옥이 군사를 일으켰다는 설도 있다. 개설 이징옥은 뛰어난 무장으로 김종서 등의 부장으로 출정, 관직 생활의 반 이상을 경원첨절제사·경원절제사·.. 더보기
삼청교육대, 정부에 의한 조직적인 폭력 및 인권유린의 대표적인 사례로 여겨진다. 삼청교육대, 정부에 의한 조직적인 폭력 및 인권유린의 대표적인 사례로 여겨진다. 삼청교육대(三淸敎育隊)는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내각을 조종·통제하기 위해 설치한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에서 1980년 8월 4일 사회악일소특별조치 및 계엄포고령 제19호에 의한 삼청5호계획에 따라 설치된 군대식 기관을 뜻한다. 대상자에는 학생과 여성도 포함되어 있었으며, 전체 피검자의 3분의 1 이상이 무고한 일반인이었다. 일반적으로, 그 설치 목적과는 달리 정부에 의한 조직적인 폭력 및 인권유린의 대표적인 사례로 여겨진다. 대상 이 작전은 대외비로 진행되어 구 전과자 및 폭력배의 목록을 미리 조사한 뒤 진행됐다. 첫 목표는 20,022명으로 정해졌으나, 파출소, 경찰서들 사이의 경쟁이 붙어 후에는 머리 숫자 채우기 식으로 검거..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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