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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간(臺諫), 관리의 감찰과 간언을 하는 벼슬아치를 이르는 말 대간(臺諫), 관리의 감찰과 간언을 하는 벼슬아치를 이르는 말 고려 시대의 어사대와 중서문하성의 간관인 3품 관직의 낭사, 조선 시대에 대관과 간관을 함께 이르는 말이다. 대관(臺官)은 관리를 감찰하는 벼슬아치이며, 간관(諫官)은 임금에게 간언하는 벼슬아치이다. 이들은 좁게는 사헌부과 사간원의 관직이며, 넓게는 이 두 관소와 홍문관까지를 아우르는 관직이다. 홍문관은 집현전의 후신으로서 경연의 자리에서 국왕의 교수 역할을 하였다. 사간원, 사헌부, 홍문관을 함께 이르러 3사(三司)라고 한다. 대간을 언관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조선 시대에 언론을 주도한 관직이기 때문이다. 또한 조선 시대에는 유교 문치주의를 표방한 사회였으므로 이러한 대간을 매우 중요시하여 이들 대간 직책은 청빈함을 요구하여서, 청요직(淸.. 더보기
물산장려운동, 경제적 예속화를 벗어나기위해 조선인 기업가와 지식인들이 규합하여 전개하다. 물산장려운동, 경제적 예속화를 벗어나기위해 조선인 기업가와 지식인들이 규합하여 전개하다. 물산장려운동(物産奬勵運動)은 일제 강점기시절, 1920년대 일제의 경제적 수탈정책에 맞서 전개하였던 국민적 민족경제 자립실천운동이다. 이 운동은 평양과 경성을 중심으로 고당 조만식, 인촌 김성수 등이 주도하였다. 배경 1919년 3.1 운동으로 일제는 무단통치에서 이른바 문화통치로 바꾸어 가게된다. 또한, 1910년대 총독부는 민족자본 회사를 억제하고자 회사 설립에 제한을 두었던 회사령을 철폐하였다. 총독부가 회사령을 폐지한 본질적인 이유는 일본 기업의 자본이 좀 더 한반도에 쉽게 진출할 수 있도록 내린 조치를 내리기 위해서였다. 그에 따라 1920년대 일제의 기업들이 식민지 조선에 지부를 설치하고 뿌리를 내리게 되.. 더보기
파리코뮌,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운동에 큰 영향을 주다. 파리코뮌,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운동에 큰 영향을 주다. 파리 코뮌(1871년 3월 18일 ~ 5월 28일) 또는 프랑스 제5차 혁명은 프랑스 파리에서 프랑스 민중들이 처음으로 세운 사회주의 자치 정부이다. 세계 처음으로 노동자 계급의 자치에 의한 민주주의 정부라고 평가되고 있는 파리 코뮌은 세계사에서 처음으로 사회주의 정책들을 실행에 옮겼으며, 단기간에 불과하였지만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운동에 큰 영향을 주었다. 같은 해 3월 3일부터 마르세이유, 리옹, 생테티엔, 툴루즈, 나르본, 그레노블, 리모주 등의 지방 도시에서도 같은 코뮌 결성이 선언되었지만 모두 단기간에 진압되었다. 프랑스-프로이센 전쟁 1870년과 1871년에 걸친 프로이센과의 프랑스-프로이센 전쟁에서 패한 프랑스 제2제국 정부의 무능함에 대.. 더보기
민립대학설립운동, 일제의 식민지 우민화 교육에 맞선 민족교육을 위한 교육운동을 전개하다. 민립대학설립운동, 일제의 식민지 우민화 교육에 맞선 민족교육을 위한 교육운동을 전개하다. 민립대학설립운동(民立大學設立運動)이란 1920년대 초반 실력양성운동의 일환으로 일제의 식민지 우민화 교육에 맞서 우리의 손으로 대학을 설립할 목적으로 일어난 문화 운동이다. 배경 일제강점기 당시 일제는 우민 정책을 실시하여 실업 교육을 강조한 반면 고등 교육은 거의 실시하지 않았다. 3·1운동 이후 문화 정치를 표방한 일제에 맞서 조만식, 이상재, 한용운, 이승훈, 송진우, 장덕수 등 47명의 조선 민족주의자들은 고등 교육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조선인의 실력양성을 표방하며 조선민립대학기성회를 조직, 일제의 식민지 우민화 교육에 맞선 민족교육을 위한 교육운동을 전개하였다. 내용 1923년 3월 29일 조선민립대학기성회는.. 더보기
흥사단, 조국의 광복과 새로운 나라 건설의 이념적 기초를 제공하다. 흥사단, 조국의 광복과 새로운 나라 건설의 이념적 기초를 제공하다. 흥사단(興士團)은 1913년 5월 13일 도산(島山) 안창호(安昌浩)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창립한 민족운동단체이다. 흥사단은 공립협회와 구국운동 비밀결사단체인 신민회 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신민회 산하 청년학우회가 흥사단의 전신이다. 흥사단은 창립에서 해방 시기까지 조국의 광복과 새로운 나라 건설의 이념적 기초를 제공하였을 뿐만 아니라 독립운동을 위한 조직적 재정후원과 일꾼양성을 통해 민족독립의 사명을 완수했다. 궁극적인 목표는 민족부흥을 위한 민족의 힘을 기르는 데 있고, 힘을 기르기 위해서는 인격훈련, 단결훈련, 민주시민훈련을 동맹수련(同盟修練)해야 하며, 국민 모두가 민족사회에 대한 주인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또 국민 개개.. 더보기
좌우합작운동, 중도파 세력 주축으로 좌우 세력 연대를 추진하다. 좌우합작운동, 중도파 세력 주축으로 좌우 세력 연대를 추진하다. 좌우합작운동(左右合作運動) 혹은 좌우합작위원회(左右合作委員會)은 1946년에 일제 강점기 이후의 정부를 수립하기 위한, 조선의 좌우 세력이 합작하여 연대를 추진하였던 운동을 말한다. 이 운동에는 중도파 세력 인사들이 주축으로 구성되어 전개되었다. 모스크바 3상 회의 1945년 모스크바 3상 회의에서 신탁통치 문제를 놓고 좌,우익 세력 간의 대립이 상당히 격화되었다. 좌익세력에 박헌영이 신탁통치 찬성 입장을 발표하면서 우익진영은 박헌영을 성토한 뒤, 반탁운동을 주장하였고 김구·이승만 주도로 1945년 12월부터 신탁통치반대운동이 있었다. 12월 27일 김규식은 최초에는 신탁통치 반대입장을 펼쳤지만, 신탁통치 전문을 입수, 읽어본 후 신탁통치의.. 더보기
김병로, 초대 대법원장, "이의 있으면 항소하시오." 김병로, 초대 대법원장, "이의 있으면 항소하시오." 김병로(金炳魯, 1887년 12월 15일 ~ 1964년 1월 13일)는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통일운동가·법조인·정치가이며 시인이다. 그의 유해는 대한민국 서울 강북구 수유동 선열묘역(삼각산로 5)에 안장되어 있다. 전라북도 순창(淳昌) 출신으로, 본관(本館)은 울산(蔚山)이다. 조선 말 사간원 정언을 지낸 김상희(金相熹)의 아들이며, 유학자 김인후(金麟厚)의 15대손이다. 호는 가인(街人)이며, 일제 강점기 신간회 활동에 참여하였고, 각 학교의 법률학 전문 교수와 독립 운동가들을 무료로 변호하는 인권변호사로 활악하며 이인, 허헌과 함께 조선국 3대 민족 인권 변호사로서 명망을 날렸다. 광복 후 1945년 9월 한국민주당 창당에 참여하였으나, 결국 한국.. 더보기
이승만의 각종 의혹, 박용만 계열 인사들은 이승만이 교포사회에서 잔악한 위험인물" 이라는걸 증언하다. 이승만의 각종 의혹, 박용만 계열 인사들은 이승만이 교포사회에서 잔악한 위험인물" 이라는걸 증언하다. 독재자가 아니라는 견해 그가 독재자라는 견해에 대해 독재자는 아니라는 설이 있다. 그에 의하면 이승만은 권위주의적이고 독선적이기는 했지만 독재자는 아니라는 주장이다. 그 근거로 4.19에 대한 책임을 지고 스스로 물러났다는 점을 근거로 든다. 하지만 이 주장에 따르면, 자의든 타의든 물러나기만 하면, 어떤 가혹한 독재정치를 해도 독재자가 아니라는 모순이 발생한다. 허정에 의하면 '우리가 독재라고 부르는 그의 행동이 얼마나 엉성하고, 어설프고, 불철저했던가. 만일 그가 스스로 독재자가 되려고 결심했다면 그는 이렇게 불철저한 행동을 하지 않았으리라고 믿는다. 독재자는 우남과는 다른 유형임을 이제 국민들은 이..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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