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왕자의 난, 무인정사, 이복형제 간의 왕위 쟁탈을 위한 골육상쟁
제1차 왕자의 난, 무인정사, 이복형제 간의 왕위 쟁탈을 위한 골육상쟁 제1차 왕자의 난은 1398년 왕위 계승권을 에워싸고 일어난 왕자간의 싸움으로, 태조 이성계의 다섯째 아들 이방원이 반란을 일으켜 반대 세력을 제거하였기 때문에 방원의 난으로도 불리며, 그밖에 방석의 난, 혹은 정도전의 난, 무인정사(戊寅靖社)라고도 불린다. 제2차 왕자의 난이 동복(同腹) 형제간의 싸움이라면, 제1차 왕자의 난은 이복 형제간의 싸움이다. 원인 왕자의 난의 원인은 크게 세자 책봉 문제와 요동 정벌 준비에 따른 오해에서 비롯했다. 세자 책봉 문제 태조에겐 조선을 개국하기 전에 맞이한 두 명의 정처(正妻)가 있었는데, 한 명은 그가 무명 장수 시절에 고향에서 맞이한 한씨이며 다른 한 명은 군공으로 입신양명한 그가 개경에서..
더보기
전지왕, 동진, 아신왕의 맏아들, 일본과 긴밀한 외교 관계를 유지하다.
전지왕, 동진, 아신왕의 맏아들, 일본과 긴밀한 외교 관계를 유지하다. 전지왕(腆支王, 390년?~420년, 재위: 405년~420년)은 백제의 제18대 국왕이다. 휘는 영(映) 또는 전(腆) 또는 여영(餘映,余映)이다. 《일본서기》에서는 직지왕(直支王), 《삼국유사》왕력에서는 진지왕(眞支王), 또 《한원》에 인용되는 《송서》, 《통전》에서는 부여전(夫餘腆)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아신왕의 맏아들이다. 일본에 있던 중 405년 아버지인 아신왕(阿莘王)이 붕어하자 첫째 숙부 부여훈해(扶餘訓解)가 임시 섭정을 맡았으나 막내 숙부 부여설례(扶餘碟禮)가 부여훈해(扶餘訓解)을 시해하고 후임 임시 섭정을 맡고 있었는데 해충(解忠)이 부여설례(扶餘碟禮)를 몰아내어 주살한 후 백제에 도착한 전지왕이 16세에 보위에 오..
더보기